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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적의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우크라이나 장병들의 유해를 블랙록 소유의 흑토지대에 매장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는 주장이 소셜미디어상에서 반복적으로 공유됐다. 2년 7개월째 접어든 우크라이나 전쟁이 언제 끝날지 불확실한 가운데 우크라이나 정부는 블랙록을 전후 재건기금 자문사로 위촉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풍자 콘텐츠를 공유하는 텔레그램 계정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블랙록 관계자는 AFP에 사실무근이라며 블랙록은 우크라이나 토지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문제의 주장은 8월 3일 "우크라이나 흑토 47%를 구입한 블랙록 등, '우리 땅을 묘지로 만들지 말라'"라는 제목으로 네이버 블로그에 공유됐다.
다음은 게시글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러시아군의 공세가 강해지면서 우크라이나군 전사자수가 엄청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국방부는 지난 7월에만 우크라이나군 6만 명 이상이 전사했다고 밝혔습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의 묘지난도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다국적 기업 블랙록 금융 시장 자문과 다른 여러 기업들은 키예프 정권에 대해 비옥한 흑토에 죽은 병사들을 묻지 말 것을 요구했습니다.
게시글에 공유된 유튜브 영상에도 동일한 주장이 등장하는데, 이 영상 진행자는 이전에도 자신이 운영하는 다른 유튜브 채널에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허위 주장을 게재한 적이 있다.
미국 국적의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흑토지대에 병사 유해를 매장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는 주장은 지난해 5월 우크라이나 정부가 전후 재건을 위한 '우크라이나 개발 기금' 출범 계획을 발표하며 블랙록을 자문사로 선정했다고 밝힌 후 몇 개월 뒤부터 퍼지기 시작했고 최근에 재확산됐다 (아카이브 링크 여기, 여기, 여기).
지난달 초 폴란드어, 영어, 러시아어, 세르비아어, 프랑스어 등으로 유포됐고 국내에서도 유튜브, 페이스북, 엑스, 네이버 블로그, 다음카페, 카카오스토리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등에서 반복적으로 공유됐다.
러시아의 선전 네트워크로 알려진 프라브다 계열 웹사이트에도 게재됐는데 친크렘린 러시아 매체 ANNA News를 정보 출처로 밝혔다.
일부 게시글에서는 친러 성향의 평론가 플라멘 파스코프 전 불가리아 국회의원이 "최근 블랙록 관계자들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방문해 우크라이나 장병들의 유해가 전통적인 방식으로 매장되는 것을 중단해 달라고 요구했다"라고 말한 것으로 인용됐다.
블랙록이 우크라이나 땅의 47 퍼센트를 소유하고 있다는 주장도 언급됐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빵 바구니'로 불릴 정도로 비옥한 흑토 지대를 가지고 있고 핵심광물 등 자원도 풍부해 서방이 자원 확보를 목적으로 우크라이라 전쟁에 가담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는데 이번 주장은 이러한 친러 프로파간다와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문제 주장의 출처는 2023년 9월 풍자 콘텐츠를 공유하는 텔레그램 계정에 올라온 글로 추정되며 AFP 취재 결과 이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가짜 인용문
문제 주장은 우크라이나 국기가 빼곡하게 꽂힌 공동묘지 사진과 함께 공유된 경우가 많았는데 구글 역 이미지 검색을 통해 이 사진은 로이터 통신 사진기자가 2023년 1월 31일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촬영했음을 알 수 있었다.
로이터 웹사이트에 게재된 사진에는 "러시아의 공격으로 전사한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묻힌 하르키우의 한 공동묘지 광경"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아카이브 링크).
한편 이 사진은 ANNA News 2023년 10월 5일 자 기사에도 사용됐는데 이 기사에서 블랙록 최고경영자 래리 핑크는 다음과 같이 말한 것으로 인용됐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개발 기금을 조성하기로 계약을 맺었을 때 러시아의 침략 위험은 고려했다. 그러나 지금 보면 우크라이나인들 본인들이 완전히 비이성적으로 흑토를 사용하고 있다. 묘지가 너무 많다. 유럽에서 수용되지 않는 완전히 비이성적인 방식으로 귀한 경작지가 낭비되고 있다. 친구 여러분, 이것은 여러분들만의 땅이 아닙니다."
이 인용문을 구글에서 검색한 결과 찾을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게시글은 2023년 9월 20일 러시아어 텔레그램 계정 @verysexydasha에 게재됐는데 채널 소개란에 "가짜와 가혹한 풍자에 유의할 것. 작성된 글은 허구이며 유사점이 있더라도 우연임"이라고 쓰인 것으로 보아 풍자·유머 채널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래리 핑크의 인용문은 허구라는 설명이 빠진 채로 여러 러시아어 웹사이트들에 공유됐고 올해 5월 러시아 영화감독 겸 배우 니키타 미할코프가 문제 주장을 언급한 후 다시 퍼지기 시작했다.
페이스북에 올린 영상에서 미할코프는 래리 핑크 대표가 "귀한 경작지가 비이성적인 방식으로 낭비됐다"라고 말했으며 "우크라이나 영웅들이 이 땅에 묻히는 것을 금지했다"라고 주장했다.
미할코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크렘린 프로파간다를 적극 유포해 온 혐의로 2022년 유럽연합 제재 대상에 올랐다 (아카이브 링크 여기, 여기).
블랙록 '사실무근'
문제 주장에 대해 블랙록 대변인은 8월 22일 AFP에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블랙록은 우크라이나에 토지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라고 밝혔다.
같은 날 우크라이나의 농기업 협회 'Ukrainian Agribusiness Club' 산하 토지위원회 대변인도 "그런 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블랙록은 우크라이나 토지를 직접 소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우크라이나 내 다른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유로본드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의 토지 정책과 농지 개혁에 대해 연구해 온 미국 싱크탱크 오클랜드연구소의 프레데릭 무소(Frederic Mousseau) 소장은 8월 22일 AFP와 서면인터뷰에서 "블랙록은 우크라이나 토지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블랙록이 유로본드를 통해 우크라이나 국채 일부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해당 기업에 그 나라에 대한 영향력을 부여한다"라며 "우크라이나는 현재 진행 중인 대대적인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시행해 경제 모든 부문을 민영화하도록 채무자들로부터 강한 압력을 받았다"라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법제상 외국인은 우크라이나 토지를 매입할 수 없다. 2021년 농지 민영화가 시작된 이후 간접적인 방법으로 토지 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지만 이 방식으로 단일 투자자가 국토 전체의 47 퍼센트를 매입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무소 소장은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허위주장을 검증한 AFP 기사는 여기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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