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위스콘신대 '연구 목적은 조류독감 잠재적 변이 예측'

조류독감의 인체 감염 우려가 확산하는 가운데 소셜미디어상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 빌 게이츠가 설립한 재단이 사람에게 쉽게 전염되는 조류독감 변이를 만드는 연구에 자금에 지원했다는 주장이 반복적으로 공유됐다. 그러나 이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지난 2009년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 후원을 받아 연구를 진행한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연구진과 해당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전문가들에 따르면 연구 목적은 조류독감 바이러스의 전파 경로를 파악하고 잠재적 변이를 예측하는 것이었다. 

문제의 주장은 6월 21일 "McCullough 재단 빌게이츠 조류독감 인간감염 연구 기부 폭로"라는 제목으로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게재됐다.

게시글에는 "생물테러: 게이츠재단, H5N1 조류독감 인체에 감염되도록 만드는 위스콘신대 연구에 950만 달러 지원"이라는 제목의 영문 기사 일부가 공유됐다.

'내추럴 뉴스'(Natural News)라는 웹사이트에 며칠 전 게재된 이 기사는 배후에 조류독감 팬데믹을 기획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식의 음모론적인 주장을 폈는데, 특히 미국 심장 전문의 피터 맥컬로우 박사를 인용해 "게이츠재단이 조류독감 바이러스를 조작해 인간과 포유류에 쉽게 퍼지게 하는 생물테러 같은 활동을 후원했다"라고 주장했다.

내추럴 뉴스와 맥컬로우 박사는 코로나19 팬데믹과 관련된 허위 정보유포전력이 있다.

이 주장은 지난달 세계보건기구가 H5N2형 조류독감으로 인한 첫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한 후 인간 감염·확산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 가운데 퍼지기 시작했다 (아카이브 링크). 

세계보건기구는 멕시코에서 59세 남성이 H5N2형 조류독감에 감염돼 4월 24일 사망했는데 이는 사람이 H5N2형 조류독감에 감염된 것이 실험실에서 확인된 첫 사례라고 밝혔다. 다만 사인은 복합적인 것으로 본다며 해당 남성은 신장 질환, 당뇨, 만성 전신동맥고혈압 등 여러 기저질환이 있었고 정확한 사인은 조사 중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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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주장이 공유된 디시인사이드 게시글 스크린샷. 2024년 7월 26일 캡처.

조류독감은 조류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된 조류나 오염된 환경에 노출돼 발생하는 급성호흡기감염병으로 국내에서는 살처분 참여자, 농장종사자 등이 고위험군으로 분류돼 있다 (아카이브 링크).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H5N1형 조류독감은 1996년에 처음 등장해 2003년부터 올해 5월까지 전 세계에서 891명이 감염됐고 그중 절반 이상이 사망했다 (아카이브 링크). 2020년부터는 조류 감염 사례가 급증했으며 종을 넘어 물개 등 다양한 포유류에 전염되는 사례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올초 미국에서는 텍사스, 미시간, 콜로라도 등 여러 주의 농장에서 젖소가 H5N1형 조류독감에 감염되는 사례가 발생했는데 미 질병예방통제센터는 이후 해당 농장들에 근무하는 사람들 중 네 명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아카이브 링크 여기, 여기, 여기).  

캘리포니아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 의학대학원에서 소아 전염병 부문을 총괄하는 딘 블룸버그(Dean Blumberg) 교수는 조류독감은 일반적으로 동물에서 사람으로 퍼지며 사람 간에 전파되는 경우는 드믈다며 "대부분 감염됐거나 감염으로 사망한 동물을 보호 장비 없이 접촉해서 감염된다"라고 말했다 (아카이브 링크 여기, 여기).

유사한 주장이 네이버 카페, 네이버 블로그, 다음 카페, 페이스북 등에도 공유됐다.

그러나 이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위스콘신대 연구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매디슨캠퍼스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09년 게이츠재단으로부터 제공받은 연구비는 조류독감 바이러스의 전파 경로를 파악하고 앞으로 어떻게 변이 될 수 있는지를 예측하기 위한 연구에 사용됐다 (아카이브 링크). 

해당 연구를 진행한 연구진은 2012년 발표한 논문에서 "연구 결과는 헤마글루티닌(HA) 성분을 가진 H5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팬데믹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아카이브 링크).

이어서 조류독감의 변이는 잠재적 팬데믹의 조기 경고 신호로도 사용될 수 있다며 이번 연구는 "H5N1 바이러스가 검출된 지역의 검역 담당자들이 팬데믹 발생 가능성을 예측하는데 필요한 주요 잔류물을 인식하는데 도움을 주고 효과적인 대응책을 개발·생산·배포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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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CDC)와 미 국립보건연구원 산하 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가 2024년 5월 24일 배포한 사진으로 개 신장 상피(MDCK) 유래 세포에서 배양한 조류 인플루엔자 A(H5N1) 바이러스 입자(금색)의 컬러 전자 현미경 사진 (CDC and NIAID)

위스콘신대학교 대변인은 6월 28일 AFP에 해당 연구의 목적은 "H5N1형 조류독감 바이러스를 사람에게 전염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조류독감이 앞으로 어떻게 변이 되어 포유류 간에 전염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었다"라며 "조류 인플루엔자의 변종들을 관찰하고 우려되는 변종을 파악할 수 있는 조기 경보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해당 연구는 "포유류에 치명적일 수 있는 조류 인플루엔자 변이를 파악한 가와오카 요시히로 교수 연구팀의 연구를 토대로 진행됐다"라고 설명하며 "세계보건기구와 미 질병예방통제센터가 이 정보를 이용해 자연에 퍼진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들의 팬데믹 잠재력을 평가하고 있다"라고 부연했다.

게이츠재단 역시 7월 1일 AFP에 온라인상에 유포된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연구 악용 우려

미 존스홉킨스대학교 보건안전센터의 선임학자이자 면역학자인 지지 그론발(Gigi Gronvall) 박사는 7월 2일 AFP에 네덜란드의 한 연구진이 H5N1형 조류독감 바이러스를 조작해 흰담비에 전염되도록 만든 실험 결과를 발표해 과학계에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아카이브 링크).

이 연구 내용을 분석해 32장 분량의 보고서를 쓴 적 있는 그론발 박사는 당시 연구에 사용된 바이러스는 "분명히" 사람에게 전염될 수 없었고 "흰담비에게도 전염성이 그리 높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아카이브 링크). 

이어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우려 때문에 논문 발표가 지연되기는 했지만 최종적으로 국가생물보안자문위원회는 해당 논문에 "근시일에 공중보건이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방식으로 악용될 수 있는 정보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라고 판단해 내용 수정 없이 그대로 논문이 게재되는 것을 승인했다고 설명했다 (아카이브 링크).

그론발 교수는 소위 '이중활용 연구' 혹은 '유전생물학강화 연구'로 불리는 부류의 연구는 분명 악용될 수 있고 또 자주 논란이 되지만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질병이나 팬데믹을 예방·완화하는데 매우 유용하게 사용될 수도 있다"라며 이 연구를 통해 우리는 H5N1형 조류독감 바이러스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2014년 이러한 연구에 대한 지원을 잠정 중단한 적이 있는데 2017년 지원을 재개하며 잠재적으로 대유행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거나 전염성이 매우 높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가 연구에 사용될 경우 보건복지부가 감독을 강화하는 새로운 규제안을 발표했다 (아카이브 링크 여기, 여기, 여기, 여기, 여기).

건강 관련 허위 주장을 검증한 AFP 기사는 여기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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