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입장을 법원 판결로 오해한 잘못된 주장

미국 항소법원이 2024년 6월 백신 의무접종 반대 소송을 기각한 하급심 결정을 뒤집은 후, 소셜미디어상에는 법원이 '코로나19 백신은 백신이 아니다'라는 원고 측 주장을 사실로 인정했다는 주장이 소셜미디어상에 반복적으로 공유됐다. 그러나 이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법률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번 판결은 원고 주장에 대한 사실 검토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다. 이번 소송처럼 증거 조사가 이뤄지기 전에 기각된 사건을 심리할 경우, 원고 주장이 사실임을 전제로 판단하는 것이 미 항소법원의 관례라고 설명했다.

문제의 주장은 6월 9일 "긴급 속보: 제9순회항소법원, mRNA COVID-19 백신이 아니라고 판결"이라는 제목의 유엔뉴스 기사와 함께 네이버 블로그에 공유됐다.

유엔뉴스는 주로 해외에서 떠도는 각종 가짜뉴스와 음모론을 번역해 게재하는 온라인 매체로 국제연합(UN)과는 무관하다.

이번에는 수차례 코로나 백신 허위 정보를 유포한 적 있는 온라인 매체 The Gateway Pundit의 기사를 번역했는데, 유엔뉴스는 미 법원이 코로나19 백신은 "감염을 막는 것이 아니라 증상을 완화할 뿐"이어서 "백신의 전통적인 정의를 충족하지 않는다는 원고의 주장을 인정했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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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주장이 공유된 네이버 블로그 게시글 스크린샷. 2024년 6월 21일 캡처.

동일한 주장이 엑스, 네이버 블로그 등에 반복적으로 공유됐다.

미국에서도 극우 음모론자 알렉스 존스(Alex Jones)와 공화당 론 존슨(Ron Johnson) 상원의원 등 우익 인사들이 이 주장소셜미디어상에 퍼뜨리면서 확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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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극우 음모론자 알렉스 존스(Alex Jones)의 엑스 게시글 스크린샷. 2024년 6월 10일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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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 론 존슨(Ron Johnson) 상원의원의 엑스 게시글 스크린샷. 2024년 6월 10일 캡처.

미국 제9연방순회항소법원은 지난 6월 7일 로스앤젤레스 통합학구(LAUSD)가 팬데믹 기간 동안 백신 의무접종 방침을 내린 것은 위법하다며 제기된 소송을 기각한 하급심 결정을 뒤집었다 (아카이브 링크).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임명한 판사 두 명을 포함해 판사 세 명으로 구성된 재판부는 2 대 1로 파기환송을 결정했다.

판결문에는 '코로나19 백신은 백신이 아니다'라는 원고 측 주장이 등장하는데 이는 원고의 주장일 뿐 사실로 인정된 것이 아니다. 

법원은 일반적으로 증거조사를 통해 사실을 심리한다. 주장에 대한 신빙성 있는 증거가 있을 경우 주장을 인용하고, 증거에 신빙성이 없는 경우 증거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주장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번 항소법원 판결은 사실심리가 진행되기 전에 선고된 것이다.

백신 정책의 법적 문제를 연구해 온 도릿 리스(Dorit Reiss)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는 6월 8일 AFP에 "코로나19 백신은 백신이 아니라고 선고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카이브 링크).

원고 주장 사실로 전제

미국의 백신 반대 단체인 Health Freedom Defense Fund 등 이번 사건의 원고들은 로스앤젤레스 통합학구의 백신 의무접종 방침이 개인의 치료 거부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원고들은 백신이 효과적으로 전염을 방지하지 않고 증상만 완화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백신보다 치료제에 가깝다고 주장한다"라는 내용이 항소법원 판결문에 나온다.

앞서 지방법원은 필요한 경우에는 주정부가 예방 접종을 요구할 수 있다고 판결한 1905년 대법원 판례를 따라 소송을 기각하며, 예방접종 의무화 방침이 이미 해제된 점 등 기각 이유로 들었다 (아카이브 링크).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UCLA)에서 건강법 및 정책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린지 와일리(Lindsay Wiley) 법대 교수는 "정부는 백신 접종자들의 중증과 사망을 방지해야 하는 정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원고들이 만일 백신이 전염을 감소시키지 않는다는 주장을 입증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하급법원은 승소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아카이브 링크).

반면 "항소법원 판사들은 원고들이 백신이 전염력 감소 효과가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충분히 승소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원고 진술에만 근거하여 심리도 전에 판결을 선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봤다"라고 설명했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번 항소법원의 결정은 원고 측 주장을 심리해서 내린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리스 교수는 증거조사가 진행되기 전에 기각 결정을 심리할 경우, 원고 측 주장이 사실임을 전제로 판단하는 것이 항소법원의 관례라고 말했다.

이 경우 파기환송 결정은 "원고들 주장이 사실인지 확인하라고 다시 돌려보내는 것"이라는 것이다.

리스 교수는 "법원은 원고들의 주장을 사실로 전제해야 하고 원고들은 코로나19 백신이 증상만 완화하고 전염을 막지는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사실심리를 진행하라고 한 것이다... 백신이 전염을 막는지 증상 완화만 하는지에 대해 판결을 선고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판결문에도 항소법원이 "현 소송 단계에서 원고들의 주장을 사실이라고 가정하고 있다"라는 점이 명시돼 있다.

이어 "현 단계에서 우리는 백신이 코로나19의 전염을 막지 못한다는 원고의 주장을 사실로 전제해야 한다... 더 발전된 사실 기록을 바탕으로 원고 주장이 진실로 판명될지는 사전에 판단하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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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9연방순회항소법원 판결문 스크린샷. 2024년 6월 11일 캡처.

미국 보스턴대학교의 니콜 후버펠드(Nicole Huberfeld) 건강법 교수도 6월 8일 AFP와 서면인터뷰에서 설사 원고들의 주장이 "논리적, 과학적 오류"로 넘쳐나거나 "심지어 음모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할지라도" 이들 진술을 '사실'로 가정하고 판단하는 것이 표준 절차라고 말했다 (아카이브 링크). 

이어서 이번 판결로 "소송이 진행될 수는 있지만 법원이 원고들의 이상한 주장을 인용한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잘못된 판단'

미 질병통제예방센터는 백신을 "질병에 대한 신체의 면역 반응을 자극하는 데 사용되는 제제"로 정의한다 (아카이브 링크).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코로나19 백신은 "안전하며 중증, 입원, 사망 방지에 효과적"이라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아카이브 링크). 지난 2월에는 백신 접종자가 미접종자에 비해 4개월 동안 코로나에 감염될 확률이 54퍼센트 더 낮다고 발표한 바 있다 (아카이브 링크). 

이번 파기환송 결정에 대해 캘리포니아 현지 매체 CalMatters는 피고인 로스앤젤레스 통합학구가 이에 불복하면 항소심은 더 많은 판사로 구성된 동 법원 재판부에 배당될 것이라 보도했다 (아카이브 링크).

한편 법률 전문가들도 이번 법원 판단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후버펠드 교수는 원고들이 백신 정책에 관한 1905년 대법원 판례를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와일리 교수는 "법원은 보통 정부가 이러한 방식으로 국민들을 보호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본다"라며 이번 항소법원의 1905년도 판례 해석은 "잘못됐다"라고 말했고, 리스 교수도 이번 판결은 "잘못된 판단"이라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아카이브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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