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두고 다시 퍼지는 '빳빳한 투표지' 주장... 법원 '위조 증거 불충분'

사진 한 장이 지난 2020년 국회의원 선거 당시 발견된 위조 투표지를 촬영한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온라인상에서 반복적으로 공유됐다. 이 사진을 촬영해 최초 공유한 것으로 확인된 박 모 변호사는 해당 사진 속 투표용지는 접힌 자국이 없이 신권 지폐처럼 빳빳하고 모두 민주당 후보에 기표돼 있었다며 지난 총선과 관련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22년 7월 판결을 통해 투표지가 접혀 있지 않다는 점만으로 위조의 증거가 될 수 없으며, 나아가 그것이 누군가가 대량으로 인쇄하여 투입한 위조 투표지라는 주장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문제 사진은 3월 8일 "4.15 총선 때 나온 사전투표지 상태"라는 문구와 함께 페이스북에 공유됐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게재된 이 사진에는 갈색 봉투에 담겨 있는 투표지 여러 묶음이 보인다.

맨 위에 놓인 투표지에는 "국회의원선거투표 (구리시 선거구)"라고 인쇄되어 있고 구리시 현역 국회의원인 윤호중 민주당 의원 기표란에 빨간 스탬프로 기표되어 있다 (아카이브 링크).

"2024.4.10 총선 때는 이런 인쇄된 투표지 무더기 나오지 않도록 경찰 철통감시 필요"라는 문구도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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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주장이 공유된 페이스북 게시글 스크린샷. 2024년 3월 15일 캡처.

구글 역 이미지 검색을 통해 이 사진은 2020년 5월 21일 박주현 변호사의 페이스북 계정에 먼저 공유됐음을 알 수 있었다.

박 변호사는 "구리 선관위 증거보전을 했습니다. 이런 관외사전투표지 봉투에 있었던 투표지가 어떻게 이렇게 빳빳할까요? 신권 지폐 수준!"이라며 문제 사진을 포함해 두 장의 사진을 공유했다.

그러면서 "이런 빳빳한 투표지는 또 어떻게 모두 1번입니다"라고 덧붙였다.

며칠 후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도 그는 "사전투표 상자를 여니 1번을 찍은 투표지가 신권 뭉치처럼 나왔다"라며 위조된 투표지가 다량 존재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이어갔다.

박 변호사는 지난 3월 14일 AFP에 2020년 5월 21일 경기도 구리시 선거관리위원회 사무실에 투표함이 보존되어 있던 곳에서 이 사진을 직접 촬영했다고 설명했다.

이 사진은 2020년 5월부터 온라인상에서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유포됐는데 최근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X 여기, 여기 등에 다시 공유되기 시작했다.

선거무효소송

소위 '접힌 흔적이 없는 빳빳한 투표지' 주장은 인천지역 한 선거구에서 제기된 선거무효소송에서도 제기됐다.

대법원은 2022년 7월 28일 "사전투표용지에 인쇄되어 있는 후보자가 4명에 불과하여 접지 않고도 회송용 봉투에 투입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투표지에 접힌 흔적이 없다는 점만으로 누군가가 사전투표지를 대량으로 인쇄하여 투입한 위조된 투표지로 보아야 한다는 "원고의 주장을 증명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될 수는 없다"라고 판시했다 (아카이브 링크). 

관내사전투표의 경우에도 선거인이 투표지를 접지 않은 채로 투표함에 투입하는 것이 가능해 보인다고 언급했다.

나아가 대법원은 원고가 "접힌 흔적이 없다"라고 주장하여 선별한 투표지를 현미경으로 확인한 결과 그중 상당수에서 실제로는 접힌 흔적이 확인됐다는 점을 언급하며, 외관상으로는 투표지에 접힌 흔적이 잘 보이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판결문에서 원고는 비실명으로 처리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무·유효표 처리 기준에도 자신이 기표한 투표지를 일부러 공개한 것이 아니라면 "투표지를 접지 않고 투표함에 투입하더라도 유효"라고 명시되어 있다 (아카이브 링크).

사실상 2020년 총선과 관련하여 제기된 부정선거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 건은 단 한 건도 없다.

중앙선관위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관련 소송은 총 126건이 제기됐으며, 선거 실시 3년여 만인 2023년 8월 31일 모든 소송이 종결됐다고 밝혔다 (아카이브 링크). 

중앙선관리 관계자는 3월 18일 AFP와 인터뷰에서 구리시 선거구에서는 선거무효소송 두 건이 제기됐는데, 한 건은 원고가 취하했고 다른 한 건은 소송 신청과정에서 형식적 요건이 갖춰지지 않아 각하됐다고 설명했다. 

투표용지

중앙선관위 관계자의 설명에 따르면 투표용지는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인쇄용지에 비해 복원력이 우수하다.

투표용지는 무림SP와 한솔제지 이 두 업체가 공급하는데, 무림SP에 확인한 결과 실제로 투표용지에는 복원력이 좋은 특수지가 사용된다. 

접힌 투표용지는 개표분류기에 넣기 전에 다시 펼쳐서 넣어야 하는데 이때 종이의 복원력이 떨어지면 용지 걸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림 관계자는 3월 20일 AFP에 "접었다가 다시 폈을 때 접힌 모양이 유지되지 않고 잘 펴진다. 접지 부분이 미세하게 갈라지지 않는다"라고 부연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다음 달 선거에서도 제21대 총선에 사용된 것과 동일한 투표용지가 사용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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