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된 영상... 실제 기자회견에서 따온 음성을 허위 자막과 짜깁기 한 것

  • 이 기사는 작성된 지 1 년이 지났습니다
  • 입력 월요일 2023/06/12 08:31
  • 3 분 읽기
  • SHIM Kyu-Seok, AFP 한국
두 편의 유튜브 영상이 영국 프리미어리그 리버풀의 위르겐 클롭(Jurgen Klopp) 감독이 중국 국영방송 CCTV와 진행한 라디오 인터뷰 내용이라는 주장과 함께 소셜미디어상에서 반복적으로 공유됐다. 두 영상에는 클롭 감독의 음성이 담겼는데, 영상에 달린 자막에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기자가 토트넘에서 공격수로 활동 중인 한국의 손흥민 선수를 비판하자 클롭 감독이 손흥민 선수를 여러 차례 옹호했다는 주장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영상에 인용된 클롭 감독의 음성은 그가 실제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의 일부를 가져와 짜깁기한 내용으로, 이 영상에 등장하는 한국어 자막과 기자들의 질문은 조작된 것이다.

첫 번째 영상은 2023년 5월 1일 "손흥민 무시하는 중국 기자에게 리버풀 클롭 감독이 내뱉은 말 ㄷㄷ (ft.참교육,케인)"이라는 제목과 함께 유튜브에 공유됐다.

2분 48초 분량의 이 영상은 15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는데, 영상에는 리버풀이 2023년 4월 30일 토트넘과 치른 경기에서 4대3으로 승리한 직후 중국 국영방송 CCTV와 진행한 클롭 감독의 인터뷰 음성이라는 자막이 등장한다 (아카이브 링크).

영상에는 클롭 감독과 인터뷰를 진행한 중국 기자로 주장되는 인물들이 영어로 대화하는 음성이 담겼는데, 영상에 달린 한국어 자막에는 기자가 손흥민 선수를 여러 차례 비판했다는 주장이 등장한다 (아카이브 링크 여기여기).

자막에 따르면 기자가 "아시아 시장을 노리고 있다면 중국 선수들은 관심이 없는가. 굳이 내리막을 걷는 선수(손흥민)에게 관심이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묻자 클롭 감독은 "그는 분명 많은 티켓을 판매해줄 선수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라 팀의 훈련 방식이나 긍정적인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을 만들어줄 선수다"라고 응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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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주장이 공유된 유튜브 영상 스크린샷. 2023년 6월 5일 캡쳐.

두 번째 영상은 2023년 5월 3일 유튜브에 게시됐는데, 이 영상에도 역시 동일한 인터뷰에서 클롭 감독이 다른 중국 기자와 진행한 질의응답의 내용을 담고 있다는 주장이 붙었다.

자막에 따르면 기자가 "(손흥민 선수는) 10골을 넣으며 그의 가치를 입증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손흥민을 선택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아시아 시장을 원한다면 중국에도 좋은 선수들이 많이 있다"라고 말하자 이에 클롭 감독은 "우리는 좋은 축구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가(손흥민) 우리들의 포지션을 잘 소화해줄 것라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유감스럽게도 우리들에게는 그것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이다"라고 응답한다.

이 영상들은 네이버 블로그 그리고 디시인사이드에도 공유됐다.

하지만 이 영상에 인용된 클롭 감독의 음성은 그가 실제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의 일부를 가져와 짜깁기한 내용으로, 이 영상에 등장하는 한국어 자막과 기자들의 질문은 조작된 것이다.

4월 28일 기자회견

조작된 영상 속 클롭 감독의 발언 중 일부를 키워드로 이용해 검색한 결과, 해당 음성은 클롭 감독이 리버풀-토트넘 경기 이틀 전인 4월 28일 취재진과 가진 기자회견 당시 한 발언임을 알 수 있었다 (아카이브 링크).

클롭 감독이 해당 인터뷰 당시 한 발언의 대부분은 같은 날 리버풀의 공식 웹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에 정리돼 있다 (아카이브 링크).

리버풀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 게시된 기자회견 영상에는 손흥민 선수와 관련된 언급이나 조작된 영상 속 기자의 질문에 해당하는 음성은 등장하지 않는다.

조작된 영상의 24초에서 34초 부분에는 클롭 감독이 "우리가 (이번 경기를 앞두고) 변화를 시도하지 않은 이유는 전에 (토트넘과의) 경기에서 승리한 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당시와 다르게 팀을 구성했기 때문에 선수들이 새로운 짜임새에 익숙해 질 수 있게금 그런 것"이라고 발언하는 음성이 담겼다.

이 부분에 달린 한국어 자막에는 클롭 감독이 손흥민 선수를 "게임을 지배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선수"라고 찬양하고 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조작된 영상에 인용된 클롭 감독의 실제 발언은 기자회견 영상 속 5분 37초에서 6분 30초 부분에 해당하는데, 이는 토트넘 경기를 앞둔 상황에서 리버풀의 선발 출전 명단에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다.

5월 2일 기자회견

두 번째 영상 속 클롭 감독의 음성 역시 그가 5월 2일 참석한 기자회견 당시 한 발언과 일치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카이브 링크).

조작된 영상의 1분 36초에서 1분 58초 부분에는 클롭 감독이 "그는 얼마 전부터 훈련을 시작했고 잘 적응하고 있지만, 일반적인 장기 부상 사례에서 보이다시피 그의 파워 레벨과 예리함이 다소 저하됐음을 관찰할 수 있다. 그래서 그가 이를 스스로 극복할 수 있게끔 놔두고 지켜보고 있다"라고 발언하는 음성이 담겼다.

해당 부분에 붙은 한국어 자막에는 이 발언의 대상이 손흥민 선수였다는 주장이 등장하는데, 발언의 내용마저도 왜곡돼 "그의 파워 레벨은 이미 최상이다. 부상 또한 없다"라고 번역됐다.

하지만 이 발언이 실제로 등장하는 기자회견 영상의 13분 40초에서 14분 29초 부분을 확인한 결과, 클롭 감독은 리버풀의 콜롬비아 국적 공격수 루이스 디아스(Luis Diaz) 선수와 관련해 발언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카이브 링크).

당시 디아스 선수는 무릎 부상으로 인해 장기간 휴식을 취하다가 6개월 만에 처음으로 복귀한 토트넘과의 경기에서 득점을 한 바 있다.

리버풀의 공식 웹사이트에 게재된 보도에도 동일한 발언이 인용됐는데, 여기서도 대상이 디아스 선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카이브 링크).

해당 기자회견에는 클롭 감독이나 취재진에 의해 손흥민 선수가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지만, 클롭 감독이 손흥민 선수가 속해있는 토트넘을 "무시할 수 없는 실력을 갖춘" 적수로 평가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별도의 검색을 통해서도 클롭 감독이 중국 CCTV와 라디오 인터뷰를 진행했다는 주장을 뒷바침할 수 있는 신뢰할만한 보도나 발표 등은 찾을 수 없었다.

과거에도 동일한 유튜브 채널에 중국인 유학생들이 서양 대학 교수들과 한국 문화와 관련해 토론하는 내용이라는 주장이 붙은 영상들이 여러 차례 게시됐는데, AFP는 취재를 통해 이 영상들이 조작된 것임을 밝힌 바 있다. 해당 기사는 여기여기에서 확인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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