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한 사람 사진에 기반한 허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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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두 장이 세계경제포럼 창립자 클라우스 슈밥과 그의 아버지의 사진이라는 주장과 함께 소셜미디어상에서 반복적으로 공유됐다. 해당 게시글에는 슈밥의 아버지가 나치 독일에서 고위직을 역임했다는 주장도 포함됐다. 하지만 이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슈밥의 사진과 함께 공유된 사진 속 인물은 독일 소장 발터 디빌라스(Walther Dybilasz)로 슈밥의 아버지와 무관하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슈밥의 아버지가 나치 독일에서 고위직을 역임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의 주장은 2022년 6월 4일 네이버 블로그에 사진 두 장과 함께 공유됐다.

다음은 해당 주장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왼쪽: 세계경제포럼 창립자 클라우스 슈밥. 

"오른쪽은 히틀러와 친했던 그의 아버지이자 기업가이자 파시스트인 Eugen Schwab입니다. 클라우스는 1938년 나치 독일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전략 회사 "Escher-Wyss"를 운영했고 죄수들이 무료로 일해야 하는 자신의 강제 수용소를 운영했습니다. 이 회사의 수입은 Klaus Schwab에게 편안한 생활을 제공했습니다."

문제의 주장이 공유된 네이버 블로그 게시글. 2022년 7월 28일 캡쳐.

  

세계경제포럼(WEF)은 1971년 제네바대 경영학 교수였던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이 창립한 민간 포럼으로, 전 세계 각국의 정계, 관계, 재계 유력인사와 언론인, 경제학자 등이 세계 경제의 현안과 경제 문제에 대한 각종 해법 등을 함께 논의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 중 하나에서 자신의 아버지의 이름이 외젠 빌헬름 슈밥(Eugen Wilhelm Schwab)라 밝힌 바 있다. 

그는 1938년 독일 남부 라벤스부르크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 그의 아버지는 그곳에서 스위스 엔지니어링 회사인 에셔 위스(Escher Wyss)를 위한 공장을 운영했다.

같은 주장이 네이버 블로그 여기, 여기, 여기에도 공유됐다.

하지만 이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오른쪽 사진 속 인물

구글 역 이미지 검색을 통해 잘못된 주장과 함께 공유된 사진 중 오른쪽 사진 속 인물이 독일 소장 발터 디빌라스(Walther Dybilasz)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디빌라스의 사진은 독일 정부가 운영하는 역사 자료 열람 홈페이지에 게시된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디빌라스 사진 스크린샷.

아래는 잘못된 주장과 함께 공유된 사진(좌)과 독일 역사 자료 열람 홈페이지에 게시된 디빌라스의 사진(우)을 비교한 것이다.

잘못된 주장과 함께 공유된 사진(좌)과 독일 역사 자료 열람 홈페이지에 게시된 디빌라스의 사진(우)을 비교.

홈페이지에 게시된 정보에 따르면 디빌라스는 현재는 독일 북부 함부르크의 일부인 알토나에서 1892년에 태어났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디빌라스는 미군에게 포로로 잡혀 소련군에 넘겨졌고, 전쟁 범죄로 25년 노동형을 선고받은 그는 1950년 오늘날 우크라이나 동부에 있는 스탈리노의 감옥에서 사망했다.

슈밥의 아버지

외젠 슈밥의 사진은 그가 1960년부터 브라질 체류에 사용했던 임시비자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1899년 스위스에서 태어났다

클라우스 슈밥 측 대변인은 독일 DPA와의 인터뷰에서 해당 임시비자에 실린 사진이 슈밥의 아버지인 외젠 슈밥이라고 밝혔다. 

아래는 외젠 슈밥의 사진(좌)과 디빌라스의 비자 사진(우)을 비교한 것이다.

외젠 슈밥의 사진(좌)과 디빌라스의 사진(우)을 비교.

WEF 대변인 역시 AFP와 인터뷰에서 잘못된 주장과 함께 공유된 사진 속 인물은 외젠 슈밥이 아니라고 전했다.

대변인은 슈밥의 저서 "Gastgeber der Maechtigen" 부록에 외젠 슈밥의 사진이 첨부돼 있는데 해당 사진과 임시비자에 사용된 사진을 비교해보면 두 인물이 같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대변인은 외젠 슈밥이 나치 독일 고위직이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슈밥 가족에 대한 모욕"이라고 덧붙였다.

탈나치화 조사

바덴뷔르템베르크 주립 기록관에 외젠 슈밥을 대상으로 한 탈나치화(denazification) 문서가 보관돼 있는데, 이를 분석한 뮌헨 현대사연구소(IfZ)의 닐스 와이즈(Niels Weise) 연구원은 해당 문서에 외젠 슈밥이 나치였다는 증거는 등장하지 않으며 그가 과거 어떤 정치적 믿음을 가졌는 지 역시 알 수 없다고 말한다. 

탈나치화는 분단 시대의 독일에서 나치 독일의 잔재를 일소하고자 했던 작업으로, 넓은 의미에서 동서 통일 이후에도 계속 진행 중인 나치 시대의 재생을 차단하는 운동을 포함한다.

와이즈 연구원은 외젠 슈밥이 "나치당(NSDAP) 당원도 아니었고, 나치당 내에서 그 어떤 직책을 맡은 바도 없다"라며 그가 "히틀러와 어떤 특별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독일 파더보른 대학교의 피터 파슬러(Peter Faessler) 현대사 교수 역시 외젠 슈밥의 탈나치화 문서에서 외젠 슈밥의 정치적 견해에 대한 어떤 결론도 도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외젠 슈밥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조사에서 그는 1946년 2월 에셔 위스 공장의 상업 관리자로서, 그리고 1946년 11월 라벤스부르크 상공회의소의 고문으로서 조사를 받았는데, 해당 조사는 외젠 슈밥에게 '혐의 없음'에 해당하는 조치를 내렸다는 게 파슬러 교수의 이야기다.

에셔 위스

라벤스부루크시의 실케 슈에틀(Silke Shoettle) 기록보관소장은 에셔 위스가 당시 다른 회사들과 마찬가지로 나치 수용소의 노동자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을 이용했다고 말했다. 

파슬러 교수 역시 "에셔 위스에게 당시 강제로 이들을 노동에 동원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됐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와이즈 연구원은 "강제 노동이 비인간적인 조치였음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이를 회사 경영자와 히틀러 사이의 특별한 관계의 결과로 치부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라며 "외젠 슈밥은 나치 수용소를 소유한 바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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